코로나 때 러닝머신 위에서 자격증시험을 준비한 이후부터 달리면서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신간책 <글로 지은 집>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글로 지은 집> 속의 강인숙 작가의 삶과 글, 그리고 사랑
<글로지은 집>의 책 제목에 이끌려 무슨 이야기일까? 상상하며 책을 펼쳐보고 '강인숙 작가님'책이라니, 저자는 우리나라의 한국예술과 문학의 거장으로 1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신 이어령박사님의 아내이십니다. 아버지는 중학교시절에 기차통학을 하시면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를 읽으시며 깊은 감명을 받으셨다고 하셨고, 강의하러 학교에 오셨을 때 이어령 박사님과 기념촬영을 하신 적이 있었다고 말씀해 주신 기억이 떠올려졌습니다.
신간코너에서 존경할분들의 작품을 만날 때는 얼마나 감사한지 직접 찾아 보물 찾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글 속에는 세대를 아우르게 하는 구절이 속속들이 배어있었습니다. 빛이 나는 구절들을 접하면서 처음 접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축수, 봉록, 엇설 일, 내핍생활'등 생소해 뜻을 찾아보며 읽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저자소개
강인숙 작가는 1933년생으로,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입니다. 그녀는 1950년대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내 가슴에 흐르는 강』, 『그리운 얼굴』, 『글 쓰는 여자』 등이 있습니다.
『글로 지은 집』은 그녀의 삶과 글,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어린 시절, 가족, 사랑, 결혼, 이웃, 지인들의 이야기와 삶의 여러 면과 현재 거주하고 있는 평창동집과, 영인 박물관까지 생사고락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전합니다.
특히, 책에서 작가는 자녀 셋을 키우며, 육아와 학업, 글쓰기를 병행해 왔습니다. 그 시절에도 요즘말로 몸이 여러 개라도 모자랄 만큼 고된 워킹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육아 도우미가 있었구나!' 하며 읽었는데 공부하시랴 육아에 직장까지. 그 시절과 지금의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모습이 닮아있어서 응원하며 읽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입니다.'라는 표제지의 문구가 열심히 살아오신 두 분의 인고의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신혼 단칸방부터 지금의 평창동 집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집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의 역경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책에는 1958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떠나고 머문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함께 존재했던 부부의 삶이 저자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이 책은 한 여자가 새로운 가족과 만나 동화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어령 선생이 그야말로 ‘글로 지은’ 집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어령 선생과의 결혼식 날 풍경, 집을 찾은 여러 문인과 예술인들의 추억,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님을 통한 6.25, 동네 한복판에서 두 눈으로 목격한 4.19와 5.16 역사의 현장, 이어령 선생의 집필 비화등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온 한 부부의 이야기가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랑, 결혼, 우정, 이웃,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즉, 삶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집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추억과 이야기로 가득 찬 '장소'이며, 삶과 죽음까지 진솔하게 담겨있습니다.
64년 이어령, 강인숙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글로 지은 집>
1958년 서울대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이어령과 강인숙이 만나 결혼하면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빈손으로 시작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꿋꿋이 살아나갑니다. 두 부부는 신혼 때는 단칸방에서 살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더 큰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어령박사님은 글을 쓰는 데 집필 공간이 필요했고, 저자는 책을 쌓아두고 글을 써야 하시는 남편의 서재가 절실히 필요했으며 아이 셋의 방과 집필하실 서재 두 공간을 위해 집을 넓히기 위한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마침내 원하는 크기의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산속의 하얀 집. 그 속에서 어려움과 아이들의 등교모습, 여러 주변 사건들과 해프닝에 웃기도 하며, 가슴 아프고 애잔하기도 하는 엄마의 마음이 동요되었습니다.
평창동 집은 이어령박사님께서 글을 쓰시고, 저자는 책을 읽고 쓰며, 자녀들과 손자까지 노닐던 곳입니다. 또한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집은 이어령과 강인숙의 삶의 터전이었고, 사랑과 추억이 담긴 곳이었습니다.
평창동집을 허무는 과정과 그때의 손주를 하늘로 보낸 힘들었던 사연까지 함께 애통하며 읽었던 부분에서 하늘로 가신 큰 손주를 네 번째 아이라고 표현하셨던 단어 하나에서 주는 사랑의 힘이 느껴집니다.
섬세한 구절로 가득한 책 속 이야기
작가의 글은 섬세하고 할머니로부터 이야기 듣는 느낌으로 포근하고 따뜻하며 작가는 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문장의 멋의 고품격이 무엇인지, 그에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여자로서, 어머니로써의 모습은 시대를 아우르는 모성애가 지금과 이어져 있음이 느껴지고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지혜를 얻게 해 줍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위로받고, 감동받는 시간을 선사해 주었고, 삶에서부터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선사해 주어 그 여운이 오래 남네요.
2남 1녀를 둔 작가의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
세 번째 아기 옆에 누워서 작가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생각하시는 부분입니다. 아이가 셋이 되면 하늘옷이 있어도 하늘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무꾼이 선녀에게 하늘 옷을 돌려준다는 언급을 하십니다. 이는 이미 청년기를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시며 베르테르식 감상적인 세계나 제임스 딘 같은 방항아의 세계와는 인연을 끊어야 할 어른의 시기가 온 것이라고. (204p-205p)
그 시대 절박한 애국심에 대하여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한 애국심으로 무심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외제차를 살 수 있는 다음세대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시며 그들에게는 가슴이 저리게 늘 아팠던 짓밟힌 조국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에 현재 한국산이 외제보다 비싼 세상이 되어 자랑스러움이 글에 고스란히 묻어있습니다. (266p)
결혼하여 단칸방으로 시작
"우리는 둘 다 남편이나 아내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방에서 떠들다 헤어지는 관계가 훨씬 애틋하고 간결했기 때문이다. 결혼에는 성과 돈이 끼어들어 번거로워진다. 양가의 가족들과 뒤 엉겨 삶이 복잡해지는 것도 달갑지 않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비본질적인 변수가 자꾸 생겨나서 생활을 늪지대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공인된 방법이 결혼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통적인 보통 가정에서 자라나서 우리는 둘 다 관습과 규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남 하는 의식을 생략하고 과감하게 동거 생활을 시작하는 흉내 같은 것은 낼 용기가 없는 상태니 결혼식을 올리는 것밖에 같이 있을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그냥 계속 같이 있고 싶었고, 아기도 낳고 싶었다. 결혼은 그 두 가지가 용납되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었다."
(1. 성북동 골짜기 단칸방중에서)
60년대 말 '고도성장을 한 민얼굴'
건물인 집을 모티브로 그 안에서의 삶이 묻어나오며 60년대 말의 한국의 모습을 '고도성장을 한 민얼굴'이었다고 하십니다. 외양은 70년대 서양스타일인데, 안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으며, 부엌과 연탄아궁이가 사방에 있어 걸핏하면 가스 중독이 되었던 60년대 말 한국의 과도기적 모습이 고도성장의 부작용이라고 표현하신 문구가 과거로 직접 가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네요.(268P-269p)
자연에 대한 정취
꾀꼬리가 "곳고리 꼬오" 하고 울고, 소쩍새는 풍년이 든다는 설이 있는데 풍년이 오니 큰 솥을 마련하라고 "솥 적다" 하면서 운다는 것이 가난했던 조상님들의 산문적인 해석이라고 설명해 주신 부분에서도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같이 술술 읽힙니다. 평창동 봄에는 소쩍새가 울면, 풍년이 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삶의 상호작용을 계절별로 느낄 수 있게 여름에는 매미의 울음소리의 묘사도 계절 변화에 따른 자연의 아름다움이 묘사되어 있으며, 산에는 꽃잔치가 자주 벌어진다는 작가는 평창동의 자연을 즐기는 모습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352p-353p)
빛이 나는 두 부부의 모습 속에 힘을 얻는 시간!
이어령 박사님은 7년간 대장암으로 투병하시면서도 글을 쓰셨고 2022년 2월 26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자는 남편이 잠든 평창동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남긴 책과 서재를 보면서, 그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립니다. 남편과 함께했던 공간은 현재 영인 박물관으로 개관하시고 관장으로 계십니다. 유품과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삶과 업적을 기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평창동은 사계절 모두 아름다우니 어느철에 가도 무방하지만, 이왕이면 송홧가루가 시폰 숄처럼 공중에서 하느작거리는 계절이면 좋겠다."(책의 마지막페이지 중에서)라고 맺으십니다. 한 세기 가까이 살아오신 세월 속에 생생하게 그 많은 시간들을 글로 세밀하게 옮기신 연륜이 얼마나 큰 인고의 열매로 나온 책이었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제목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글로 지은 집>은 사랑과 우정,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집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추억과 이야기로 가득 찬 장소이며 책 속에서 다시 호흡을 불어넣은 듯 상기시켜 줍니다. 강인숙 작가님의 책 <글로 지은 집>을 통해 삶의 소중함과 사랑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쓰면 잘쓸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나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 쓰기 어려우신분께, 유머를 살짝 곁들여 쓰는 글은 어떠한 글인지 잘 풀어놓았습니다. 추천드려요.